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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날세- 2015. 12. 29. 12:03



그믐에 가까워져 가던 달은 엷은 빛만을 하늘에 뿌리고 있었다. 늦은 밤의 길을 따라 달리는 버스는 점점 하늘을 가득 채운 도시의 누런 나트륨등의 불빛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충분히 어둠에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한적한 농로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해변가에 다다랐다. 빛 한 점 없는 해변에는 부서지는 파도소리만이 채우고 있었다.

 검다기 보다 보라빛으로 빛나던 하늘에는 수백의 창백한 빛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빛들 사이에서, 명멸하는 강렬한, 빛줄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유성우를 만나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 명멸하는 창백한 빛의 모습이란 경이롭기까지 했다. 21세기를 살고있는 현대인들조차도 밤 하늘 앞에선 이런 감정을 느꼈을진대 수 천년 전을 살아가던 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졌을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하늘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했기에 거석들을 세우고 감히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으리라 믿겨지지 않는 자신들을 위해 그들의 신들과 신화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세이건은 이 책에서 고대의 수렵 채집인들이 은하수를 보며 만들어낸 그들의 신화들을 소개하며 현대에까지 인류의 발자취를 되짚어가고있다. 그의 발길을 따라가다보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인류를 지금에까지 이끌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하는 생각말이다.


 나는 언제나 과학 기술에서부터 예술, 정치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을 구성하는 어떤 것이던지 그것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과학기술의 진보에 있어서 이 과정을 촉발시킨 것은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과 동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것을 무작정 두려워하며 신에 기대고 있지만은 않는다. 나는 고대에서 지금에까지 변화를 촉발한 정신은 이 두려움을 이겨낸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우리를 동굴 속의 인간에 비유했다. 그의 동굴 안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동굴 속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는 한 무리의 인간이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식하는 것은 모닥불이 비추는 물체의 허상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따라서 영원히 세계의 본 모습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굴 밖에서 들어오는 빛의 편린을 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서 눈부신 동굴 밖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사람만이 찬란한 태양이 비추는 세상을 볼 수 있다. 세이건은 이 책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저 그림자만을 보고 동경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광휘로 빛나는 세상을 만나기 위한 개척자들을 예찬한다.


"끝 없이 평쳐진 광대무변의 이 우주란 얼마나 놀랍고 훌륭한 설계인가. 그렇게 많은 수의 태양들과, 그렇게 많은 수의 지구들, 별들까지의 엄청난 거리와 또 그들의 수를 생각 할 때 우주에 관한 우리의 경외심은 또 얼마나 깊어져야 할 것인가?"


 위의 호이겐스의 말에서 느껴지듯이 우주에 대한 경외심에서 발로한 정신으로 동굴 밖의 찬란한 지혜에 맞닥뜨린 인류의 선조들이야말로 진정한 개척자임에 틀림없으며, 이 정신은 저자 칼 세이건에서부터 그의 책을 읽은 수천, 수백만 명의 가슴속에 이어져오고 있을 것이다.